![[오피니언] 죽음 기피가 계속 될 때, 웰빙(Well-Being)은 없다.](https://zbpwxkokqffmtaoozgie.supabase.co/storage/v1/object/public/post-images/1789275787718-k9yct379ybh.png)
유성원 메모리얼소싸이어티 대표
웰빙의 본래 뜻은 잘 존재한다는 것이다. 존재에는 시작과 끝이 있으니 그 말에는 잘 사는 것과 잘 죽는 것이 함께 들어 있다. 웰리빙과 웰다잉은 하나의 웰빙을 앞뒤에서 부르는 이름일 뿐이다.
생물학이 보는 죽음은 담담하다. 유전자 수준에서 죽음은 정보의 소멸이 아니라 운반체의 교체다. 부모의 살아 있는 세포에서 자식의 세포가 나오는 사슬은 40억 년 동안 끊긴 적이 없다.
사람 수준에서는 다르다. 한 사람이 죽으면 그만이 가졌던 기억과 관계와 관점, 하나의 세계가 정말로 끝난다. 유전자는 저절로 전달되지만 사람의 존재는 언젠가는 죽어 사라진다.
그래서 인류는 수만 년 전부터 시신을 묻고 꽃을 놓고 이름을 새겼다. 사라지는 존재를 다음 세대에 건네려는 노력이 제도로 굳은 것이 추모문화다.
죽음의 두려움을 다루는 길은 오로지 둘뿐이다. 자녀로 생명을 잇거나, 기억되고 남기는 것으로 존재를 잇거나.
합계출산율 0.8명의 한국은 첫 번째 길이 세계에서 가장 가늘어진 나라다. 그 길이 좁아질수록 어떻게 기억되고 무엇을 남기는가의 무게는 커진다.
현실은 거꾸로 간다. 죽음은 병원에서 일어나고 장례는 사흘 만에 끝나며, 아이들은 조부모의 임종을 보지 못하고 학교에는 죽음교육이 없다.
사람은 자기 유한함을 마주할 때 비로소 다음 세대에 무언가를 남기려는 마음을 갖는다. 죽음을 지우면 삶의 유한성도 지워지고, 결혼과 출산과 화해처럼 언젠가 해야 할 일들은 한없이 미뤄진다. 죽음을 피하는 문화와 삶을 미루는 문화는 한 뿌리에서 자란다.
잘 죽는 것은 잘 산 결과이고, 잘 사는 것은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아는 데서 시작한다. 유한함을 아는 사람은 오늘의 관계를 미루지 않고, 무엇을 남길지 생각하며 살고, 남은 이들에게 정리된 이별을 건넨다. 존재를 다음 세대에 건네는 일은 문화를 가진 유일한 종인 인간에게 권리이기 전에 의무다.
정책이 할 일도 분명하다. 교육과정에 생애주기 전체를 다루는 죽음교육을 넣고, 가족이 임종을 함께할 수 있는 돌봄과 장례 환경을 만들고, 자녀가 없는 사람도 자기 이름과 기록을 품위 있게 남길 공공 추모 인프라를 갖추는 일이다. 장사시설을 기피시설로만 다루는 입지 규제도 다시 봐야 한다.
생과 사가 한 줄로 이어져 있음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잘 사는 법과 잘 죽는 법을 한꺼번에 배운다. 저출산과 고령화를 함께 맞은 한국이 시작해야 할 추모문화의 재정의가 여기에 있다.